| 글 : 이승주 기자 |
| ● 한국에서 非서울대 非연세대 의대 출신은 불임의사 되기 힘들다 ● 인턴 때 흰 가운 네 벌 준비한 치밀한 뚝심 ● 학회장에서 외국 석학에게 손들고 질문했다가 망신당해 ● 환자들까지 ‘어느 의대 나오셨어요?’라고 따지고 들어 ● 몽골에서 더 유명한 불임의사가 되기까지 비화 ● 독도문제, 거론하는 독특한 의사 ● 면역처방 너무 과하면 없던 자가질환이 생길 수 있어 ● 때로는 ‘진실’보다 환자부부의 행복을 더 우선시할 수 있어야 ● 진정한 명의는 환자의 고통을 읽어내는 연기자라야 최범채(崔凡彩) : 본관 화순. 1960년 광주 출생. 조선대 의대 졸업(1985년). 영국 본홀 불임클리닉, 연수(1994년). 하버드의대 브리험 여성병원(1995~1997년) 연수. 성균관 의대 삼성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 국내외 불임학회 학술상 8회 수상, 現 시엘병원 병원장(광주광역시 소재) |
▲최범채 원장에게 해외 환자들이 감사편지와 사진을 많이 보내온다.
불임의사 최.범.채.
▶불임의사로써 보람을 느낄 때가 많지요?
“시험관시술만 열일곱 번 도전한 여성이 있었어요. (나에게) 서른여덟살에 왔는데, 서울에서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니다가 온 거죠.”
▶무엇이 문제던가요?
“일단은 어둡고 냉소적이었어요. 나에게 치료를 받으러 와서도 ‘하려면 해 봐라. (지방의사인) 너가 어떻게 하겠어?’의 느낌이었어요. 제가 시험관시술 다섯 번을 더 했습니다. 예전에 유산한 것 때문에 내막이 다 망가져 있어서 월경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제가 내시경시술을 두 번 하니까 월경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저를 신뢰하더군요. 그런데 자꾸 반복해서 시험관아기시술을 해 봐도 착상 실패가 되니까 나중에는 제가 더 미쳐버릴 것 같더라고요. 그분에게 ‘입양을 하던지, 대리모를 하던지 해라’고 권했어요. (제 말에) 그분이 폭발을 해 버렸어요. ‘당신이 의사냐? 왜 환자의 희망을 꺾냐?’라고 펄펄 뛰는 겁니다. 제가 ‘좋은 이야기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그분이 한 번 더 시술에 도전했고, 결국 쌍둥이가 임신이 되었어요.”
▶정말 기뻤겠습니다. 무사히 쌍둥이를 낳았나요?
“아휴… 20주 때 양수가 터졌어요. 대학병원에 가서 처치를 받고서 89일간 시어머니가 대소변을 받아냈다더군요. 결국 아들을 낳았어요. 딸은 배 속에서부터 사망했고요. 양수가 터졌을 때 딸이 아래에 있었는데 미라가 돼 버린 거예요. 하지만 그 딸이 엄마 자궁 아래에서 딱 막아주면서 위에 있는 아들을 살려낸 거였어요. 제가 그 집 돌잔치까지 초대받았어요. 정말 너무너무 감격스럽대요. 그때는 내가 불임치료 의사가 된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웃음)”
▶의사로써 가장 힘들 때가 언제입니까.
“산부인과 의사다 보니 환자의 과거에 대해 비밀유지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여성이 왔어요. 그 환자는 과거에 유산을 해서 자궁내막이 망가져 있었어요. 내시경을 하자고 하니까 과잉진료라고 그러더군요. 남편은 ‘결혼해가지고 2년 밖에 안 되었는데 자궁이 왜 이 모양이냐.’라고 제가 내시경을 잘못해서 망가진 것처럼 따지더라구요. 돈까지 뜯어내려고 했어요. 그 환자는 다른 병원에 가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지, 저에게 계속 오더군요. (제가) 못 견디겠더라고요. ‘의사로써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나, 내 자신에게 데미지를 안 입히기 위해서 남편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나’, ‘환자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돈이 깨지더라도 환자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품어야 하나.’ 너무 고민이 되더군요. 결론을 내렸지요.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그 가정의 행복을 깨 버리면 안 된다고.”
▶난임을 겪는 여성들, 신경이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니지요.
“다문화가정 여성들, 이주 여성들이 임신이 잘 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인터넷 잘 모르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가 잘 안 통하니까 뭘 잘 몰라요. ‘오로지 선생님만 믿습니다’로 날 따라옵니다. 그래야 임신이 잘 되어요.”
▶남편들이 협조를 잘 안 하는 케이스가 많다면서요.
“한국 부부들은 좀 낫습니다. 같이 불러놓고 대화하면 젊을수록 이해가 더 빨라요. 문제는 외국인 아내를 둔 농촌 남자들이더라구요. 한번은 한국 남자가 스물 살 연하 외국 아내에게 ‘돈 주고 데리고 왔는데, 애도 못 낳고’라면서 대판 싸우는 거에요....(한숨)... 아무튼 저는 불임병원에는 꼭 남편과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남편 얼굴 안 보고 시술할 순 있지만, 전 꼭 같이 오라고 합니다. 의사와 아내와 남편이 삼위일체가 되어야지, (임신을) 환자하고 내(의사)가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불임의사가 된 걸 만족합니까.
“그럼요. 이 분야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정답이 없어요.”
▶명의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제가 뭐… 진정한 명의는 환자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환자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환자의 주머니 사정도 걱정을 해 줄 수 있어야 해요. 환자가 처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어야지 환자를 임신시켜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들은 책도 많이 읽고 세상의 트렌드도 알아야 해요. 인문학적인 배경이 있어야 다양성에 접근할 수 있고, 시각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저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 원장은 “의사는 배우와 비슷하다”면서 “의술은 정답을 향해 가야겠지만, 의술의 대상은 인체이기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는 항시 오답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기에 의사는 잘난 척 해선 안 되고, 다 알아도 다 아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건 일종의 ‘연기’랍니다. 연기자가 드라마에 출연했다고 자기 성격이 변하는 게 아니니까 최선을 다해 연기해야 해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진료에 임하면 집에서 있었던 일과 걱정을 다 버려라. 그래야 베스트가 된다. 병원에 드라마 찍으러 온다고 생각해라. NG가 나면 그게 바로 의료사고다’라고. 몇 명 안 되는 직원 몇 명 없는 병원일지라도 의사는 오너입니다. 오너는 절대로 흥분해선 안 되고, 설사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진료해야 합니다. 전 그래서 속상하거나 흥분되는 일이 있으면 시술 전이나 진료 전에 잠깐 명상을 하고 들어가요.”
최 원장의 몸을 감싸고 있는 묘한 기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복자의 눈빛을 닮은 듯 했지만 생각과 말은 따뜻했다. 기질은 ‘사업가’스러웠으며 ‘사회운동가’와 흡사했다. 지난 세월의 겪음이 공격을 받고도 흔들림 없이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인물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의사로서 소신은 단호했다. 과잉검사, 과잉처방에 대해 질색을 하며 “자꾸 ‘과잉’하다보면 포장이 되고, 결국 돈 밖에 모르는 의사로 전락하게 된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 ‘유명한 의사’보다는 ‘존경받는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이 읽혀졌다. 본래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뭔가 옳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보다 ‘실수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클 수 있는데, 달랐다. 역시 굴욕감과 자존심에 타격을 입어본 경험자만이 가질 수 있는 배짱이었고 여유였다.
노동도 노동 나름이다.
의사의 의술행위는 피 앞에 절규이며, 생명 앞에 간절함이다.
환자는 의사에게 몸만을 맡기지 않는다. 인생과 미래를 맡긴다. 의사는 이 무겁고 부담스런 십자가를 어깨가 아니라 손에 짊어지고 살고 있는 전문가다. 흔히 사람들은 명의에게 ‘미다스의 손’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신이라는 의미보다는 사람을 살려내는 손이자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적인 손과 같다는 경의의 표시다.
기자는 이런 상상을 했다. 만약 10만 군대로 30억 인구 영토를 정복한 징기스칸이 살아있다면 닥터 최범채를 주치의로 발탁했을지 모른다는. 그에게는 단 몇 분 만에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제어하며 진심을 잘 읽어내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듯 했다.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고 든든해졌다. <끝>








































